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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야기
 
작성일 : 08-05-09 09:15
바늘 끝으로 느껴봐~
 글쓴이 : 오규찬
조회 : 6,917  
자동차로 충북 청원과 경북 상주 간 고속도로 하행 길을 달리다 보면 나지막이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귀에 익숙한 이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곳은 다름 아닌 도로! 자동차 바퀴와 도로의 마찰음으로 어떻게 멜로디를 만들 수 있는 걸까? 축음기의 원리를 이해하면 이 ‘노래하는 도로’에 대한 궁금증은 쉽게 풀린다.

축음기를 포함한 모든 음향 기기는 소리를 기록한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소리를 기록하는 과정을 파악하기에 앞서 소리에 대해 짚고 넘어가 보자. 소리는 물체가 진동하면서 생긴다. 아니, 소리는 곧 진동이다. 물체의 진동은 주변을 둘러싼 공기 또한 진동시키며, 이 진동이 파의 형태로 퍼져 나간다. 유리컵에 물을 담고 컵을 두드려보면 물결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달된 파가 우리 귀에 도달하면 감각기관이 이를 소리로 인식한다.

축음기는 이러한 음파를 기록하고 재생하는 기계다. 원리를 생각해보면 축음기의 가장 간단한 구조를 예상할 수 있다. 일단 소리를 모으기에 좋은 나팔 모양의 관이 필요하고, 이 관의 끝에 작은 진동에도 잘 떨 수 있는 얇은 막을 매달아야 한다. 막은 파형을 기록할 만큼 자유롭게 움직이면서도 끝이 날카로운 물체와 연결되어 있어야 하고, 이 날카로운 물체가 파를 새길 수 있을 만큼 무른 기록장치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한순간이 아니라 전체 소리를 새겨두기 위해서는 기록판이나 축음기 자체 둘 중 하나가 시간에 따라 일정하게 움직여야 한다.
위의 과정을 녹음이라고 한다면 재생은 그 역순이다. 즉 기록된 파형에 따라 떨리는 바늘의 움직임이 막으로 전달되고, 이 소리가 나팔 모양의 관을 통해 확대된다.
초창기 축음기는 날카로운 물체로 바늘이나 단단한 끈을 사용했고, 기록장치로는 밀랍 등을 이용했다. 양초는 손톱으로 살짝 긁기만 해도 자국이 남는다. 이 초를 원통의 겉면에 얇게 바르고 손잡이를 달아 손으로 돌린다고 생각해보자. 이것이 초기 축음기가 파형을 기록하는 장치의 구조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축음기의 세부 구조가 바뀌었다. 우선 기록 매체는 시간이 지나면 단단하게 굳는 성질이 있는 합성수지를 사용하게 된다. 또한 기존의 축음기 바늘이 세로로 움직이던 것에 반해 가로 형태로 바뀌면서 기록 매체도 원통형으로 수직 회전하는 것이 아니라 원반 형태로 제작되는데, 흔히 ‘레코드판'이라고 불리는 LP가 그것이다. 모터를 이용해 LP를 회전시켰고 기록 매체는 합성수지로 하나의 틀을 만들어 같은 음반을 대량으로 찍어냄으로써 음반 사업이 발달했다.

전자 기술이 발달하면서 나팔관 대신 마이크가 소리를 모으는 장치로 쓰였고, 기록부분까지 전달하는 것도 본래의 진동이 아니라 마이크를 통한 전류와 자기의 강약으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진동을 통해 LP에 최종적으로 기록되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그 후 광학 매체와 디지털 기술의 발달을 거쳐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CD 플레이어는 음파의 정보 자체를 기록하는 원리로 작동한다. 진동을 기록하는 것을 아날로그라고 한다면, 디지털은 말 그대로 디지털 신호를 기록하는 것이다. CD에는 디지털 신호파 형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를 통해 사람이 들을 수 있는 파형으로 바꾸어 준다.
일상생활에서도 축음기의 기본 원리를 이용해 간단히 재현해볼 수 있다. 어렸을 적 장난감 대용으로 사용했던 ‘실 전화’를 떠올려보자. 실 전화는 두 개의 종이컵 바닥에 작은 구멍을 뚫고 실로 연결한 다음 팽팽하게 당겨 사용한다. 그리고 한쪽 종이컵에 대고 말을 하면 크기는 작더라도 반대편 컵에 귀를 대고 들을 수 있다. 한쪽 종이컵의 진동을 실이 반대편 컵에 전달해 상대방의 귀에 닿으면 감각기관이 소리로 인식하는 것이다.

날카로운 물체가 진동을 기록장치에 기록하는 축음기와 마찬가지로 ‘노래하는 도로’에서는 도로가 기록장치가 되고, 바퀴가 날카로운 물체가 된다. 도로에 멜로디의 음파를 기록해 두면 바퀴가 음파를 재생하여 흥겨운 노래를 연주한다. ‘음악을 몸으로 느낀다.'라는 광고 문구처럼 어쩌면 음악은 듣는다기보다 몸으로 진동을 느낀다는 표현이 정확할지도 모른다.

글 : 김창규 칼럼리스트